[의협신문] 보령의료봉사상 국희균 원장 - 의료봉사로 축복 받은 삶
- 작성일2017/01/16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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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봉사로 축복 받은 삶
국희균 사랑플러스 병원장
기사입력시간 2017.01.16. / 10:39:53 의협신문 Doctorsnews | admin@doctorsnews.co.kr
국희균 원장이 기억하는 대학 시절의 그는, 젊은 혈기로 소위 운동권에 몸담아 사회문제에 정면 돌파하던 청년이었다. 정형외과 전공도 산업재해에 노출돼 있는 공단 사람들을 보호하고 싶은 마음에서 선택했다. 어쩌면 그 시절 의료봉사는 그에게 사회 문제에 대한 반항심 정도였을지도 모르겠다.
▲ 국희균 사랑플러스 병원장
그러나 인천기독병원에 몸담게 되면서 의료봉사는 좀 더 구체화된다. 인도·네팔·필리핀·중국 등 세계 곳곳의 한국인 선교사들의 소개로 봉사활동을 실행에 옮겼고, 때로는 현지 선교사의 부탁으로 현지인들을 무료로 수술해주곤 했다, 최근에는 라오스 청소년 국가대표선수 등 40여 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지인들은 지금까지도 그가 펼치는 의료봉사 활동에 커다란 주춧돌이 돼주고 있다.
"고등학교 때 우연한 기회로 A.J 크로닌이 쓴 <천국의 열쇠>라는 책을 읽게 됐죠. 의사로 출발한 소설가 크로닌의 삶은 저에게 하나의 롤모델이자 동경의 대상이었습니다. 젊었을 때 최선을 다하는 전문가로 살고, 나중에는 글도 쓰면서 인류에 힘이 되는 봉사가로 사는 것이 저의 꿈입니다."
봄베이의 여름, 후회 없는 삶의 시작
국희균 원장은 레지던트 3년차이던 24년 전 봄베이의 여름을 잊지 못한다.
"40도가 넘는 여름이었죠. 그 시절 레지던트들은 거의 인간적인 취급을 못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잠도 못자고 힘들게 배우기만 했습니다. 병원의 정기 의료봉사 활동에 동참하게 됐는데, 하루 200명이 넘는 환자들을 진료했습니다.
정말 힘들더군요. 그런데 3∼4일 지나고 나니 저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겁니다. 그때 문득 내 행동에 대해 다른 생각을 하게 됐죠."
대한민국 의료의 문제점을 부르짖으며 학생운동까지 했지만, 문득 자신이 비판했던 사람들과 하등 다를 바가 없다는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사회비판만 하려 했지, 행동은 전혀 하지 않았구나 하는 새삼스런 생각도 했다.
봄베이의 여름 이후, 그는 후회 없는 삶을 살고 있다. 14년 동안 쉼 없이 의료봉사를 다녀왔고, 지역사회에서도 다양한 봉사 활동을 펼치고 있다. 목디스크·허리디스크 등 이제 슬슬 몸이 망가졌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지만 국희균 원장은 그 신호를 훈장으로 여긴다.
"대학 졸업 전에 부모님을 여의고, 흔히들 말하는 흙수저로 시작했죠. 그래도 환자들이 믿고 따르는 모습 하나로 지금껏 잘 해왔다고 생각합니다. 살면서 깨달은 것 하나는, 자신보다 남에게 베푼 것을 하나님은 기억하고 그 이상의 축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남에게 대접받기 위해서는 먼저 대접하라는 성경의 "골든룰"은 그에게 삶의 기준의 됐다. 그렇게 스스로 신념을 지키며 살아온 그에겐 하루하루가 축복이었다.
다른 이를 도우면서 받는 축복이 더 크다
14년전 개원하면서 국희균 원장은 나름의 원칙을 만들었다. 바로 정확하게 진료하겠다는 것. 환자를 유인하거나 거짓 환자를 받는 행동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직원 13명으로 시작한 그는 지금 100여 명 직원들과 함께하고 있다.
"처음 2년동안 적자를 면치 못했지만, 점점 소문이 났습니다. "저 병원은 정확하게 진료한다"고 말입니다."
그렇게 지역사회의 신임을 얻었고 수술을 가장 많이 하는 병원, 대학병원 못지않은 수준의 병원으로 자리 잡았다. 지금의 병원으로 이전할 때도 어려울 때마다 마치 하나님의 계획인 것처럼 도움의 손길이 찾아왔다. 부지를 구입하면서 어려움이 닥쳤을 땐 평소 의료봉사 때 도움을 주던 지인이 이자도 없이 7억원을 빌려주기도 했고, 어떤 직원은 노후자금통장 1억을 선뜻 건네기도 했다.
은행이란 은행을 다 찾아다녔는데 안 되던 대출은 병원의 성장 가능성을 인정한 농협에서 받을 수 있었다. 병원을 건립하고 4년, 이제 사랑플러스병원은 지역사회에서 신뢰를 얻으며 어느 정도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정기적인 해외 의료봉사 활동과 한국컴패션 후원, 장애인들을 위한 장학금 수여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 이유는 서로 선순환하며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여유가 있다고 남을 돕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같은 경우 술·담배를 하지도 않고, 골프도 안치고 잘 놀지도 못합니다. 유일하게 수영을 배우는데, 수강료 9만 5000원이면 되죠.(웃음) 봉사는 거저가 아니라는 말을 꼭 하고 싶었어요. 반드시 어떤 형태로든 보상받게 됩니다."
월급이 50만원이던 시절, 더 힘든 이에게 선뜻 그 50만원을 건넨 적이 있었다. 그런데 다른 곳에서 그 50만원을 얻는 뜻밖의 경험을 했다.
"지금 젊은 후배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도 바로 다른 이를 도왔을 때 받는 축복이 더 크다는 겁니다. 저희 아이들이 지금도 가장 좋아하는 사람을 아빠로 꼽는데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합니다."
서울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있는 첫째 아들 역시 아빠와 어렸을 때부터 봉사활동을 다닌 영향으로 NGO단체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지니고 있다.
국희균 원장은 여러 경로를 통해 어린 나이의 아이들과 함께 봉사활동을 다녔는데, 그 아이들이 지금은 성장해 의사·간호사로 의료인의 길을 함께 걷고 있다. 그들로부터 간혹 "아저씨처럼 살고 싶다"는 말을 들으며 뿌듯한 마음에 행복해진다.
국희균 원장은 의료구호단체인 더브릿지(The Bridge)를 결성, 병원 수익의 10분의 1을 봉사활동에 쓰고 있다. 스스로의 다짐과 함께 2대, 3대 원장들도 지켜나갈 수 있도록 정관도 만들었다.
이번 설에는 C채널과 함께 병원 가족들과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을 찾을 계획이다. 러시아는 3번째 방문인데 영하 40도까지 내려가는 엄동설한의 날씨가 사무치게 싫지만, 또 소중한 인연을 맺을 사람들을 생각하면 기대가 크다.
"말레이시아 정글에선 팔이 부러져 관절이 3개인 사람을 만났습니다. 개인적으로 쓰려고 가져간 돈 200불 전부를 수술하라고 줬던 기억이 나요. 이렇게 소중하게 맺은 인연은 계속 이어집니다. 종종 좋아졌다는 소식을 전해듣는데 그게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기쁨입니다."
우리의 작은 움직임이 세상을 변화시킬 것
국희균 원장은 점점 더 살기 어려운 세상이라도 스스로 중심을 가지고 원칙을 만들어 살아간다면 세상이 더 좋아질 것이라 믿고 있다. 우리의 작은 움직임이 세상을 변화시킬 것이라는 나비효과를 다들 기억해주길 바란다.
"나라가 어수선한 때 비판도 중요하지만, 사회 구성원들이 어떻게 최선을 다해서 살 것인가를 생각해보았으면 합니다. 특히 의사들이 함께 모범을 보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국희균 원장은 국내외 의료소외지역에 대한 의료봉사 활동을 펼치며, 새터민 지원·외국인노동자 진료 등으로 분주한 와중이지만, "황금알"이라는 방송에서도 만날 수 있다. 방송 전 서점을 돌며 관련 책을 사서 읽고